노래 부르며 택배 나르는 사이버대학생, 가수 윤성
2015년 6월 23일

“같이 힘내요♬” 노래부르는 2집 가수 ‘택배 대리점장’

기사원문 :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5060217133418784&outlink=1

[피플]윤성구 CJ대한통운 파주 문산대리점 점장

“아침을 알리는 알람 소리에 두 눈 비비며 하루를 시작하고/ 누가 깰까 하는 걱정에 조용히 문을 나선다/ 부르릉 힘차게 출발하면~ 새롭게 시작될 세상과/ 시원히 불어오는 바람 내 얼굴에 닿으면/ 오늘도 난 달린다 희망찬 내일을 위해/ 그래서 난 웃는다 날 보는 사람들 있으니~”(가수 윤성, 택배의 하루 中)

윤성구 CJ대한통운 파주 문산대리점 점장(35·사진)은 집하, 분리작업, 배송 등 하루 24시간을 가득 채워 돌아가는 택배를 보며 ‘우리의 하루’를 떠올렸다.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며 일과를 시작해 때론 지치기도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삶에 미소 짓는 일상.

윤 점장은 “‘같이 힘내자’는 의미로 곡을 쓰고 노래 부르게 됐다”고 말했다. 도망친 기억도 있지만 내일은 오는 만큼 그는 희망을 노래하자고 했다.

윤 점장은 택배 대리점의 대표이자 2집 가수(싱어송라이터),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지닌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과거에는 라이브카페 가수와 직접 택배기사로 일하기도 했다. 지난달 29일 경기 파주시 CJ대한통운 파주 문산대리점에서 그를 만났다.

택배와 노래는 윤 점장의 삶 속 동반자다. 택배는 그에게 다시 노래 부를 수 있는 기회를 줬고, 노래는 택배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군이 됐다. 윤 점장이 처음 기타를 치고 노래 불렀던 때는 20년 전, 둘째 형의 기타를 남몰래 쳤던 순간이다.

고교 시절을 거친 그는 가수를 꿈꾸며 예술대에 진학하려 했지만 부모님 반대에 부딪혀 대학 광고홍보학과에 입학했다. 여전히 음악에 흥미를 느낀 그는 2003년 군복무를 마치고 라이브카페에서 가수로 활동하며 음악생활을 이어갔다.

음악은 관객이었던 여자친구를 아내로 만들어준 징검다리였지만, 음악만으로 살아가기에는 힘들었다. 생활은 불규칙했고, 수입은 부족했다. 주위의 염려도 컸다. “결국 치던 기타를 덮었죠. 노래만 들으면 눈물이 나서 2009년까지는 음악을 안 들었을 정도예요” 그는 말했다.

윤 점장은 좋아했던 것을 포기한 만큼 성공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고 했다. 이때 만난 택배는 지금도 하는 일이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중소택배업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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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택배가 참 힘들었어요. 종 취급도 받고, 멱살 잡히는 것도 일상이었죠. 급여도 적었고요.” 성공에 대한 욕구가 더 커진 이유이기도 했다. 이미 도망쳤던 기억은 택배업에서 ‘꼭 성공해야겠다’고 그를 이끌었다. 체계화된 택배시스템을 만들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택배기사로 하루 수십 kg의 짐을 나르던 그에게 차츰 경력이 쌓였던 2006년 CJ GLS가 삼성 HTH와 합병하며 그는 지금의 문산대리점 점장을 맡게 됐다. 파주 안팎을 다니며 화주를 유치한 결과 현재 월간 물동량은 15만개에 달한다. 택배기사로 일한 경험은 직원들과 소통하는 데 도움을 줬다.

택배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고, 고객들의 인식도 점차 바뀌어 사업이 안정되던 가운데 그는 2012년 5월 다시 음악을 만나게 됐다. 고양시 국제 꽃박람회에서 공연할 아마추어 밴드 모집 공고가 눈에 띈 것.

처음에는 노래할 생각이 없어 베이스 기타로 지원했지만 연습을 돕던 가수 이동은씨(국방FM DJ)의 눈에 띄었다. 윤 점장은 이씨의 제안을 받아 연습하다가 2012년 12월 1집 앨범을 내게 됐다. ‘구’를 빼고 ‘윤성’이라는 예명으로 옛 꿈을 이뤘다.

3곡이 수록된 1집 앨범은 첫사랑의 감정이 담겼다. 포기했던 음악을 만날 수 있는 설렘이기도 했고, 음악을 다시 할 수 있게 한 택배에 대한 고마움이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에는 2집 앨범 ‘더 스토리’를 발표하며 ‘택배의 하루’라는 이름의 곡을 수록했다.

윤 점장은 “원래는 ‘택배의 하루’가 아닌 ‘우리의 하루’가 제목이었어요. 24시간 동안 많은 손을 거쳐 옮겨지고, 배송되며 나아가는 택배를 보면서 24시간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내 삶이자, 대한민국의 삶에 희망을 노래하고 싶었죠”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달에 12차례 정도 주말과 퇴근 시간을 이용해 공연중이다. 희망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공연에서 번 돈은 기부에 쓴다. 또 서울디지털대학교 물류통상학과에 편입해 공부 중이다. 박사학위까지를 목표로 세운 윤 점장은 “좀 더 공부해 성장중인 택배업에도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도망쳤던 제가 결국 두 동반자를 만나게 된 것처럼, 때론 힘들겠지만 많은 분들께 ‘밝게 살아가자’ 메시지를 드리고 싶어요.” 윤 점장은 오늘도 노래를 부른다.